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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나의 영재고 대비 + 합격까지의 과정(3년쯤 뒷북)

*3년 전 본인의 입시내용이라, 현재와는 많이 다를 수 있습니다.

*작성자의 주관이 매우 많이 포함되어 있으며, 실력이 좋으신 분들이 보기에는 역겨울 수 있습니다.

 

언젠가는 한번 써 보고 싶던 글이다.

이 때의 경험들이 지금의 나에게 정말 많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아, 미리 말해두지만, 이 글은 '합격' 수기지, '성공' 수기는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입시 실패 수기에 더 가깝다.

이유는 읽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멋지게 성공하는 나를 보고 싶었던 독자 여러분께는 죄송하다. ㅋㅋ

글은 타임라인 순으로 정리되어 있다.

 

영재고를 모를 때

 

대충 초6~중1 때쯤이다. 이 때부터 부모님은 나를 막연히 과학고나 영재고에 보내고 싶어하셨던 것 같다. 나도 수/과학을 꽤 좋아했기 때문에 별 저항 없이 학원에 다녔다. 

 

저 때는 보통 선행을 한다. 중1~중3까지의 수학을 엄청 빠르게 훑고 수1, 수2를 끝낸 다음에 KMO로 가는 빌드가 일반적이다. 미적분은 몰라도 별 지장이 없기 때문에 하지 않는다. 

 

KMO를 시작할 것이라면 이 때 중등 기본, 수1과 수2를 제대로 해 놓는 것이 엄청 중요하다. 솔직히 학원에서 가르치는 엄청 어려운 수식들이 KMO에는 잘 안 나온다. 그냥 산기, 코시, 중등기하, 그래프 기본 등만 잘 알고 있다면 대부분의 풀이를 유도할 수 있다. 내가 그걸 잘 못해서 3년간 쩔쩔맸으니 뭐 승급을 못하건 뭐건 제-발 제대로 하고 가자. 학원에 끌려다닐 필요 없다. 몇 개월 정도 늦더라도 개념만 제대로 잡혀 있으면 금방 따라잡는다.

 

여기서 할 말은 별로 없다. 대부분의 학원에서 엄청 급하게 나갈 텐데, 굳이 따라갈 필요 없고, 이 단계가 의외로 중요하다 정도로 일단 끝마치겠다.

 

KMO 공부

나는 중1~중2 사이 기간에 1년 반 정도 진행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KMO를 굳이 시키는 이유는 수학에 대한 감을 키우기 위해서인 것 같다.

 

나는 C** 학원에서 계속 진행했는데, 전 해 6월부터 12월까지는 계속 이론을 공부하면서 복습테스트를 진행하고, 12월 겨울특강부터 본격적으로 문제를 풀면서 모의고사를 마구 돌렸다.

 

나는 복습테스트는 항상 200명 정도 중에 60등, 모의고사는 대충 400명 중에 120~100등 정도 했었다. C** 학원에는 승강제가 있는데, 반을 M1, MS, A1, A2, ... 뭐 이렇게 단계식으로 만들어놓고 등수에 따라 재배치하는 느낌이다. 나는 진짜 처음부터 끝까지 B1에만 있었다.

 

그 과정에서 정신병 수준의 열등감에 시달렸었다. 나와 함께 시작한 친구들은 막 10등, 5등 이렇게 하면서 반을 쭉쭉 올리고 있는데, 나 혼자 열 몇개월동안 계속 같은 반에 있으니까.. 그냥 죽고 싶었다. 독서실도 거의 빼지 않았고, 수업도 거의 다 들었는데 실력이 느는 느낌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그냥 한 3개월쯤 지났을 때 때려치고 기본기를 챙기기 위해 자습하는 게 더 나았을 지도 모른다.

 

이 때 나는 정석, 에이급, 평면기하의 아이디어, 장환수학 조합 등등을 계속 돌렸다. 위에서 말했듯이, 1차 대비에는 엄청 어려운 게 필요하지 않다. 계속 노력하고 기본기만 챙겨가면 된다. 그런 면에서 저 교재들을 택한 건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이렇게 공부하고도 중1때 처음 본 KMO는 25점, 중2때 본 건 30점이 나왔다. 아마도 다른 영재고 친구들이 들으면 진짜 벌레처럼 보일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크게 보면 이 때 중요한 건 이론도, 학원도 아니다. 자신의 수학적 감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걸 공부해야 하고, 뭐를 풀어야 실력이 오르겠다라는 것이 느껴지면 학원에 붙어있을 필요가 전혀 없다. 솔직히 그 시점에서는 그냥 자습만 해도 기본은 할 것이다.

 

제일 최악은 기본기가 아예 없는 상태에서 KMO 대비를 한답시고 앉아만 있는 것이다. 자신이 이런 상황에 처해 있다면 그냥 때려친 다음에 기본기부터 다시 하자. 계속 말하지만 몇 개월 늦는 건 기본기만 잘 되어 있으면 금방 복구된다.

 

물올, 화올 대비

나는 KMO를 조지고 나서, C**에서 또 다시 영재고 입시 대비를 시작했다. 보통 6월부터 9월까지는 그냥 별 의미 없는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우리 부모님은 일단 죽어있던 나의 과학을 살려내기로 했다.

 

문제는.. 방법이 크게 잘못되었었다는 것이다. 우리 부모님은 나를 물올 학원에 일단 집어넣었다. 물리에 대한 기본기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물올 학원에 가 봤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하루 6~8시간씩 앉아 있으니까 그냥 죽을 맛이었다. 선생은 뭔지 모르겠는 말만 계속 하고, 나는 그걸 한 귀로 흘리고..

 

당연히 물올도 조졌다. 물올은 성적 통지를 백분율로 하는데, 50% 밖이면 아예 안 알려준다. 나는 50% 안에도 들지 못했다.

 

그 다음에는 화올이었다. 물리는 못해도 화학은 잘할 것이라는 근자감을 가지고 신청한 느낌.. 이때도 화학에 대한 기본기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학원에 14~15시간씩 앉아있었다. 진짜 미친 것 같았다. 그냥 졸려 죽을 것 같아서 맨날 맨 뒤에서 몰래 졸았다. 이 때는 그나마 잘해서 180점 만점에 70점을 받았다. 아마 상위 40..몇퍼였을 것이다.

 

자, 지금까지의 글에서 공통점이 보이는가? 나는 기본기가 약하거나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시도했고, 항상 결과가 좋지 못했다. 그 와중에 학원에는 맨날 성실히 다녔다. 

 

즉, 학원은 하나도 안 중요하다. 듣는 사람이 중요하다. 기본기를 제-발 챙기자. 아마 처음 하면 그래도 영재고 대비생이랍시고 하이탑 이런거 살 텐데, 진짜 기본기가 없으면 그것도 어려울 것이다. 자존심 챙기려고 끝까지 하지 말고 기초 개념 인강 이런거 보면서 천천히 하자. (물론 자신이 똑똑하다면 저런 거 필요없다. 그냥 막 해도 다 잘 될 것이다.)

 

영재고 입시

일단 들어가기 전에, 입시를 하는 학생의 대부분은 깨닫지 못하지만 입시가 지나고 보면 깨닫는 사실이 있다.

 

"될 놈은 되고, 안 될 놈은 안 된다!"

 

잔인한 사실이다.

 

입시 판은 KMO랑 조금 다르다. 기존에 공부하던 애들이 오기 때문에, 실력 변화가 거의 없다.

안 붙을 사람이 열심히 노력해서 자기가 원래 갈 곳보다 높은 곳에 붙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원래 서울과고 붙을 것 같던 애가 그냥 공부 하나도 안 해도 붙는 경우는 많다. 처음에는 다들 서울, 경기를 지망하지만, 결국은 자기가 원래 갈 곳으로 회귀하게 되고, 보통 거기 원래 붙을 사람은 붙고 떨어질 사람은 떨어진다.

 

그렇다고 열심히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자기가 '서울과고 붙을 놈' 인지 어떻게 아는가? 만약 자기가 공부를 얼마 안 해봤다면, 정말 제대로 해서 자신의 그릇이 어디까지인지 한번 알아보자. 

그리고, 실제로 열심히 하면 더 높은 목표에 도달할 수도 있다. 다만 진짜 열심히 해야 한다는 거..

 

아쉽게도 나는 안 될 놈이었다. 1년 반을 공부했는데 KMO 30점 맞고, 과학 기본도 안 되어있는 사람이 어떻게 될 놈이겠는가.

 

영재고 입시도 KMO를 대비하는 과정과 대충 비슷하다. 전 해 9월쯤부터 시작해서, 12월까지는 개념을 하고, 겨울 특강 때부터 모의고사를 돌리면서 문제를 마구 푼다. 난 또 C**에서 대비했다. 시작할 때에는 경기과고를 희망했다.

 

반 시스템도 비슷했다. 계속 승강전을 하는데, 나는 항상 SG에 있었다. 대충 서울과고 생각 없는 애들 중에서는 제일 높은 반이라고 보면 되지만, 서울과고 반이 3개였기에 별 의미는 없었다. 등수는 전체 기준으로 500명 중에 140등쯤 했던 것 같다. 이 때도 열등감이 정말 심했다. 서울과고반 애들을 보면서 괜히 자격지심에 빠져 있기도 하고, 저 애들은 어떤 기분일지를 매일 밤 상상하면서 잠들기도 했다. 

 

본격적인 파이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매일 물화생지 하이탑을 돌리고, 학원에서 주는 수학문제를 1~2시까지 풀면서 살았다. 하이탑은 정말 좋은 선택이었던 것이, 보통 대비하는 애들은 그냥 학원만 다니고 문제집을 잘 안 푼다. 하이탑 문제만 풀 줄 알아도 어느 정도의 경쟁력이 생긴다. (물론 일정 레벨 안에서만)

 

그런데, 저 때 너무 열심히 산 것이 나에게는 독이었다. 2년 반 동안 매일 1시에 집에 들어가니까 몸이 상해가기 시작했다. 학교가 개학한 3월 초부터 중순까지 대충 2주동안 몸이 안 좋아서 학원을 다 뺐다. 사실 굉장히 중요한 시기인데, 그렇게 되어버리니까 몸과 마음이 모두 아팠다. 영재고 대비라는 건 마라톤이다. 너무 몰아서 열심히 하지 말고 꾸준히 열심히 하자. 그리고, 아침 자습이나 새벽 자습 나오라는 거 솔직히 별 필요 없다. 필요한 시간에 효율적으로 하자. 효율적으로!

 

그 시간이 지나고 3월달이 되자 학교마다 모의고사를 따로 보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경기과고 모의고사를 봤는데, 전체 140명 중에 70등대였다. 별로 긍정적이진 못했다. 학원에서 70명씩 붙지는 않으니까.. 

 

조금 고민하다가 낸 결론은, '나는 붙고 싶다' 였다. 어느 영재고든간에 가서 공부할 수 있다면 진짜 행복할 것 같았고, 그래서 바로 세종반으로 들어갔다. 5번의 세종 모의고사에서는 순서대로 학원 전체 5, 4, 3, 3, 3등을 박았다. 어이가 없었다. ㅋㅋ

 

그 뒤로의 두 달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하던 대로 공부했고, 모의고사도 계속 잘 나왔다. 그리고 무난히 합격했다. 

 

결론

이게 왜 실패 수기냐면, 나에게 투자된 시간과 비용에 비해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나와 함께 공부를 시작한 친구들 중에서 거의 꼴찌 수준의 수학/과학 실력을 가지고 입시를 끝냈다.

 

솔직히, 처음부터 세종과학예술영재학교에 지원할 것이었다면 학원은 한 3개월 정도만 다녀도 충분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때는 기본기만 있으면 어렵지 않게 붙을 수 있는 난이도였다. 에이급 수학같은거 잘 풀고, 과학 근본만 챙겼어도 점수는 비슷했을 거다.

 

그래서 이 글이 말해주고 싶은 게 뭐냐고 묻는다면 대충 세 가지로 요약 가능하다.

1. 학원을 너무 믿지 말 것

2. 기본기를 챙길 것

3. 열심히 해도 안 나올 수 있다는 것

 

만약 당신이 과거의 나 같은 대비생이라면, 제발 기본기를 챙기자. 제발 학원에게 휘둘리지 말자.

그런 학생을 두고 계신 학부모님이라면, 아이를 내몰지 말아 주세요. 그리고, 진짜 필요한 게 뭔지 한번 더 생각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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