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각

재능이 없으면 어떻게 하는가 - 3/7 일기

일기라는 것은 참 묘한데

 

나는 항상 짧게 써야겠다고 다짐하고 일기를 쓰기 시작하지만

 

쓰다 보면 자꾸 더 쓰고 싶은 것이 생각나서

 

결국 상당한 양의 질 낮은 글을 양산하게 된다

 

역시 글은 계획하고 써야 한다

 

 

오늘도 상당히 좋지 않은 하루였는데

 

평소처럼 수업에 갔다가 돌아와서

 

딱 15분만 자려고 했으나

 

당연하게도 5시간 넘게 퍼질러 자버렸다

 

보통 이런 식으로 낮잠을 자면

 

온몸에 땀이 나고 목이 더럽게 마르며

 

하나도 안 개운할 때가 많은데

 

이번엔 아주 편안하게 자고 일어난 것으로 보아

 

몸이 아예 이 시간을 밤이라고 인식하게 된 것 같다

 

언젠가 한 번은 이악물고 잠을 참다가

 

적절한 시간대에 잠들어야 할 것 같다

 

 

00시에 좀비처럼 비척비척 일어나서는

 

노트북을 하기 시작했는데

 

평소처럼 쓰레기같은 정보들을 흡수하던 찰나

 

한 가지 글이 눈에 들어왔다

 

 

"군대에서 CVPR 어셉"

 

내용을 보니

 

공군 복무중이시던 서울대 병사 한 분이

 

연구를 통해 CVPR 학회(컴퓨터비전 인공지능 학회)에 저널을 내셨다고 한다

 

그것도 공동 1저자로

 

내가 알기로 CVPR 정도면 컴퓨터공학 분야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권위를 가진 학회이다

 

 

나에게 가장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은 다른 게 아니고,

 

그 분이 군생활 동안 남는 시간이면 항상 자신의 연구를 고찰해왔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런 곳에 올라오는 저널을 이해할 능력조차 없으며

 

이해하지도 못하는 내용을 자유자재로 집필할 수는 더더욱 없다

 

나는 CVPR에 논문을 낼 수 있는 경지까지 가기 위해 필요한 노력과 지식의 양을 체감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저 "남는 시간에 생각하는 것"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는 어느 정도 알 것 같다

 

 

나도 군인이었어서 알지만

 

남는 시간에 무언가를 생각하거나 고민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흔히들 공군에 입대하는 사람들은 남는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겠다고 생각하고 입대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도 그러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은 브롤스타즈와 릴스같은 단발성 오락거리에 투자되었고

 

실제로 내가 한 자기계발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생각보다 일과 시간이 피곤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굉장히 편한 군생활을 보내긴 했지만

 

그것과는 무관하게 일과 시간이 상당히 피곤했다

 

어딜 가도 나보다 높은 사람이고

 

그들의 눈치를 안 볼 수도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 비위를 맞춰주어야 하며

 

그래도 나름 전투복을 환복하고 "일"을 하기 때문에

 

일과 후에는 사람 보상심리상 놀아줘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돌아오면 매우 피곤해서 잠이 솔솔 온다

 

나 같은 경우에는 맨날천날 자느라 아무것도 못하다가

 

내 후임 중 한 명이 나를 운동시켜줘서

 

그나마 정상적인 군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저 분은

 

1. 매일같이 피곤한 것을 억지로 참고 본인의 연구를 계속 끌어왔거나

 

2. 정말 저 분야가 즐거워서 노는 것과 공부가 다를 것이 없거나

 

중 최소 하나는 충족시키셨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뭐가 되었든 정말 부럽고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현재 상태로서는 저 두개 모두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명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저런 사람들을 주변에서 꽤 봤는데

 

보통 우리는 공부를 "해치워야 할 일" 정도로 인식하지 않는가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진심으로 궁금하고 흥미로워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치열하게 고민하곤 한다

 

이런 "즐기는 자" 들이 정말 놀라운 성과를 내는 경우가 잦더라

 

 

이들을 이기기는 정말 어려운데

 

가령 내가 어떤 수업을 듣는다고 치면

 

나는 개강 후에야 공부를 시작할 것이며

 

정해진 시간대에만, 다른 하고 싶은 것을 참고 억지로 공부를 할 것이고

 

기출문제만 풀거나 족보를 구하는 등

 

효율적으로 시험만 잘 보기 위한 질 낮은 공부를 하게 될 것이다

 

 

"즐기는 자"들은 그게 아니다

 

일상적으로 공부를 한다

 

그들은 "수업"이라는 매개체 없이도 평소에 학문에 관련된 생각을 자주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유로운 방식으로 여러 관점의 지식을 마주할 것이고

 

자연스럽게 높은 성숙도를 갖추게 된다

 

그 상태에서 관련 수업을 수강하면

 

예전에 여러 번 재미로 알아보고 공부했던 이미 익숙한 내용들이 많기도 하고

 

곁가지로 공부했던 다른 분과의 내용들과 겹치기도 하며

 

수강 기간 동안 딱히 쉬는 시간 없이 지속적으로 자신이 궁금한 것을 고뇌하고 알아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관련 내용을 훨씬 효율적으로, 길게, 질 높게 공부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보통 잘하면 즐기게 되기 마련이므로

 

즐기는 자들은 재능도 출중한 경우가 많다

 

 

결론적으로 학문을 "처리해야 할 업무"로 생각하고 접근하는 나 같은 사람은

 

절대 평소에 일상적으로 학문을 접하고 다루는 사람을 이길 수가 없다

 

 

하지만 나는 평생 즐기는 자 밑에 깔려서 살기 싫다

 

그렇다면 내가 즐기는 자가 되어야 할 텐데

 

그런 방법이 있을까?

 

 

내가 생각해낸 한 가지 방법은 간절한 목표를 찾는 것이다

 

나는 승부욕과 열정이 불러일으키는 감정도 즐김의 일종이라고 본다

 

남들보다 대단한 사람, 뛰어난 사람이 되는 것 자체가 즐겁지 않은가

 

나는 어릴 때부터 수많은 경쟁에서 패배하면서

 

세상 대부분의 것이 내가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 이후로

 

그러한 감정들이 모두 거세된 상태인데

 

아 내가 무언가를 꼭 해야겠다

 

와 같은 목표가 다시 생긴다면 누군가를 반드시 이겨야 하기 때문에

 

이를 위해 뭐든지 공부하는 "즐김"의 상태에 돌입하지 않을까 싶다

 

가령 나는 "학점을 잘 받아야지" 정도의 목표는 있어도

 

"아 학점을 잘 받지 못하면 나는 죽어" 와 같은 간절한 승부욕을 가지고 있진 않다

 

만약 내가 진짜 학점이 간절했으면 지금도 이거 안 쓰고 공부하고 있었겠지

 

 

지금 내 인생에 뚜렷하고 명확한 목표가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아마 뚜렷한 목표가 있다면 나 또한 이를 이루기 위해 누가 봐도 인정할 만큼 열심히 노력하게 되겠지

 

현재로서의 나는 이루고자 하는 바가 있어서 학업을 이어나가고 있다기보다는

 

지금까지의 기회비용이 무의미해지는 게 싫을 뿐인 것 같다

 

솔직히 지금 당장부터 그냥 모든 걸 포기하고 적당히 학교만 나가다 졸업해도

 

굶어죽진 않고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부모님이 나에게 투자한 자본과

 

여태껏 내가 들인 노력에 비해서

 

조금 아쉬운 결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걸 안다고 해서 명확한 목표, 내가 열정을 들일 수 있는 목표가 생기진 않는다

 

나도 내가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는데

 

그냥 열정이 생기질 않는다

 

항상 억지로 어떤 목표를 설정해 보아도

 

그 목표에 대한 진실된 열정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늘 단발성으로 끝나곤 한다

 

이런 내가 나는 너무나도 싫지만

 

그렇다고 나를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므로

 

그냥 이렇게 계속 살고 있다

 

근시일 내에 내가 진심으로 좋아할 수 있는 어떤 목표가 생겼으면 좋겠다

 

 

 

당신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무언가를 즐길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축복이다

 

나는 축복받지 못해 불행하다.

 

 

 

오늘 일기는 여기까지...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